리골레토의 음악세계

김영랑

1막의 전주곡은 조심스럽게 적막을 깨는 트럼펫과 트럼본의 유니즌으로 시작된다. 한 음이 부점리듬으로 단순하게 반복되는 이 모티브는 주인공 리골레토를 사로잡고 있는 ‘저주’의 모티브이다.

리골레토

만토바 공작의 어릿광대, (바리톤)

질다

리골레토의 딸, (소프라노)

만토바 공작

 (테너)


 <그에게 말할 것이 있소 Ch’io gli parli>

몬테로네 백작의 첫 등장


<그 늙은이가 나를 저주했다 Quel vecchio maledivami>

리골레토

몬테로네 백작의 첫 등장 <그에게 말할 것이 있소 Ch’io gli parli>에서 몬테로네는 자신의 딸을 겁탈한 공작과 그 사실을 조롱하는 리골레토 둘 모두에게 천벌이 내릴 것이라며 저주한다. 그는 특히 리골레토를 ‘아비의 아픔을 비웃은 자’라 겨냥하며 한 번 더 저주하는데, 리골레토는 이를 <그 늙은이가 나를 저주했다 Quel vecchio maledivami>며 1막 내내 강박적으로 되새긴다.

친애하는 그 이름이여 Gualtier Malde... Caro nome

리골레토가 저주에 사로잡힐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그 역시 딸을 가진 아비이기 때문이다. 소중한 딸, 질다를 세상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그는 그녀를 외딴 집에 숨겨두고 있다. 그러나 아버지 몰래 사랑에 빠진 그녀는, 그 상대인 공작의 정체를 가난한 고학생으로 오해한 채 <괄티에르 말데.. 친애하는 그 이름이여 Gualtier Malde... Caro nome>를 부른다. 그녀의 고립된 처지, 순수한 사랑, 순결함은 항상 조용하고 감미로운 플루트 선율과 함께 노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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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항상 자신만만한 공작의 노래는 대부분 3박자안에서 또는 3연음 리듬의 반주 위에 쓰여졌다. 1막에서 그의 첫 독창 <이 여자도 저 여자도 Questa o quella>, 질다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노래 <사랑은 영혼의 햇살 È il sol dell'anima> 그리고 2막의 <그대의 눈물이 보일 듯 하다 Parmi veder le lagrime>에서 공작은 각기 다른 형태이지만 3연음의 박동으로 일관되게 반복되는 반주 위에서 노래한다. 이 리듬이 공작의 바람기를 경쾌하게, 때로는 감미롭게 잘 표현하는 듯하다. 3막의 그 유명한 아리아 <여자의 마음 La donna e mobile> 또한 힘차고 당당한 3박자의 오케스트라 투티 반주로 시작한다.

<여자의 마음 La donna e mobile>

 베르디의 관현악 작곡 기법의 탁월함



 이 작품에서 베르디의 관현악 작곡 기법의 탁월함이 가장 두드러지는 부분은 3막의 폭풍우 씬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저음 현악기의 화음위에 간간히 들리는 플루트의 공허한 울림은 어둠이 내리고 구름이 몰려오는, 폭풍이 오기 직전의 스산한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묘사한다. 뒤이어 베르디는 플루트와 오보에로 번개를, 저음 현악기의 트레몰로로 천둥을, 무대 뒤 남성 합창 소리로 바람을 묘사하는데, 그는 장면의 시작 부분에서 이 연결된 폭풍우 모티브들을 악절의 처음 또는 끝에만 사용해 긴 시간차를 두었다. 이는 마치 아직은 폭풍이 멀리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한다. 공작을 죽이는가 마는가를 두고 스파라푸칠레와 막달레나가 언쟁을 벌이면서 극의 분위기는 고조되고 날씨도 점점 험악해진다. 바람과 뇌우의 시간차가 점점 좁아지고 한마디 간격으로 번갈아 나오더니 마침내 합쳐진다. 타악기가 가세한 오케스트라 투티가 공격적으로 내려치는 화음을 신호탄으로 두 남매의 살해 공작이 폭풍우와 함께 터져 나온다. 이 와중에 질다가 합류하면서 더욱 처절해지는 오케스트라 사운드는 가히 이 작품의 클라이막스라 할 수 있다.


<저주로다! Ah, la maledizione!>


 작품의 마지막에서 공작대신 죽은 질다를 끌어안고 리골레토는 <저주로다! Ah, la maledizione!>라 외치며 무너진다. 천둥과 같은 나의 목소리가 어디서든지 너희를 떨게 하리라던 몬테로네의 저주(..la voce mia qual tuono vi scuoterà dovunque)가 내내 리골레토 자신의 혼잣말로 반복되다가, 폭풍우가 지나간 후 마지막 절규로 바뀌는 것이 의미심장하다.
IPAC 리골레토 프로덕션 2021/22

안희준 연출

2021년 가을 10월 20일 저녁 7시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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